Friday, 1 September 2017

국제학교 교직 이수 과정에 대한 생각

오리엔테이션 기간이다. 뭘 할지는 가봐야 알았다. 근데 가보니까 계속 자기들 홍보만 하더라. 이럴려고 만불을 준건 아닐텐데... 지금 생각해보면 전교조 얘기는 왜 안하나 싶다. 오히려 학생들한테 학부모한테 당하더라도 우리끼리는 뭉칠 수 있어야 한다는 그런 얘기는 한번도 꺼내지 않았다. 그래서 불안감이 증폭됐다. 안그래도 선생님 하면 걱정이 많을텐데 벌써부터 멘탈을 탈탈 털려 한다. 심지어 이렇게 저렇게 도움을 청해봐도 도와줄 수 없다는 뉘앙스도 풍긴다. 오리엔테이션부터 시키는건 많았는데 죄다 쓸데가 없었다. 백신에 문제제기 하는 애랑도 설득하는 투로 얘기하지도 못하고 진화론 얘기도 함부로 꺼내면 안된단다. 그럼 무슨말을 하나. 죽으라는 얘기다. 그러다가 별 같잖은 액티비티를 한다. 모호한 단어 나열하면서 분류해보란다. 뭔놈의 창의교육인지 질문엔 별 상관없는 대답해도 좋다고 박수쳐주란다. 아무리 수학을 안하더라도 멍청한짓과 올바른짓은 다 구분할 수 있을텐데. 살짝 외롭다.

한국에 대한 생각

속초에 가서부터 캐나다에 오기까지 50대 후반을 지낸 남자들에 대한 생각을 계속 했다. 그 이유는 그들이 나에게 주는 스트레스 때문이였다. 할아버지가 방 밖으로 나가지 말라 했을 때 스트레스를 받았지만서도 오히려 그걸 지켜보고 있던 큰아빠의 위로차 하는 말도 스트레스였다. 그의 취지는 어쨌든 할아버지의 말을 들어야 한다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내가 할아버지 몰래 나갔다 와도 그 말을 들은 직후에 나는 큰아빠의 눈치도 보게되었다. 내가 할아버지한테 혼나는 장면을 본 다른 한분인 이모 할머니는 내게 괜히 자기가 더 미안하다는 눈치였고 앞으로는 말하지 말고 몰래 나가라 그런 말이였다. 근데 생각해보면 큰아빠가 한 말도 사실은 이모할머니가 한 말과 같은 내용이었다. 근데 큰아빠의 말 속에는 할아버지에 대한 존경이 섞여있었고 할머니의 말 속에는 할아버지가 늙어서 그렇다는 뉘앙스가 있었기에 나는 이모할머니의 어투에 훨씬 편안함을 느꼈다. 이렇게 큰아빠를 까는 이유는, 죄책감이 들긴 해도, 그가 의도하지 않게 상대방이 상처받는건 어쩔 수가 없는것 같아서이다.

나는 보통 말로 상처받는거에 대해 서술하고 그러면서 힐링을 하는 문제는 훨씬더 험학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아 말을 꺼내는데 주저하긴 하지만, 한국 50대 후반을 지낸 남자들의 행동은 한국의 주요 역사적 사실들과 연관관계가 있기에 얘기를 꺼내본다. 50대 후반을 지낸 분들은 우선 세뇌교육을 당했고 6.25를 경험하셨다. 70대 후반분들은 특히 그렇기에 크고 작은 전투에 이겨도 주위에 북한군이 숨어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당연히 할 수 밖에 없고, 그렇기에 그 후유증으로 연좌제를 시행했을 수 있다. 그렇게 하다가 필요 이상으로 많은 사람들을 이념이란 모호한 기준으로 축출하고 죽였다. 할아버지는 그런분이다. 그렇게 전쟁에서 승리하시고 일제의 도움을 받아 일자리를 얻어 내가 잘 살고 있는거다. 어쩌면 한국의 많은 이들이 그러하다.

이런 상황에서 할아버지의 장손인 큰아빠가 할 수 있는건 별로 없다. 그당시 할아버지는 무섭고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명령과 복종의 관계였기에 어쩌면 지금 큰아빠의 꼰대짓 혹은 할아버지의 이상에 반기를 들지않는 행동은 아주 당연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같이 이 정도 주장은 아무나 할 수 있다. 구체성이 떨어지고 그들의 이해관계에 훨씬 더 흥미로운 부분이 많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어쩌면 명령과 복종의 관계는 이미 다들 알고 있는 사실일지도 모른다.


Saturday, 26 August 2017

캐나다 이민에 대한 생각 2

이제 시작이다. 현재로서는 그 어떤 이에게 의지할 곳도 없다. 그래서 무섭고 방안에 틀어박혀 있을까봐 두렵다. 그동안 캐나다에서의 내 삶은 무기력이 지배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인지 지금은 그 무기력함이 두려움의 대상이다. 내 주변에 사람이 많았으면 좋겠다.


캐나다 이민에 대한 생각

나는 한국이 엄청 싫었나? 벗어나고픈 욕구가 강했나? 그건 아닌 것 같다. 그래서 그들이 바라보는 캐나다 이민과 내가 생각하는 캐나다 이민은 또 다르다.
한국에 놀러와서 그럴지도, 군대가 얼마나 힘든지 몰라서 그럴지도, 평소 받지 않던 용돈을 받아서 그럴지도 모르지만 캐나다에서의 삶은 내가 완전히 홀로 버려지지 않는 한 내가 만들어가는 삶이 아닐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과거의 이민자들은 어떻게 사는지 문득 궁금해진다. 역사가 궁금해진다. 교사를 하면 최소한 캐나다 역사를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Thursday, 13 July 2017

Today's Literature

People whose voice is a little bit louder than others use common knowledge to be academic yet in a way that it was not known before but revealed. That being said, 'frame', 'motivation', those types of psychology and statistical branch are the most abusive ones.


Wednesday, 28 June 2017

무엇을 해야하나

꼭 뭘 해야하나? 일단 '무엇을 해야하나'라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는 나에게 역으로 질문을 해본다. 무엇을 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내가 행복해지거나, 더 건강한 삶을 살길 바라는 마음, 동시에 더 큰 그림을 그리기 위해 추구하는바를 이행하기 위한 마음 등등에 부합하기 위해 스스로에게 '무엇을 해야하나'라고 물어본다. 순간순간 내가 운동을 열심히 하고 나서 가만히 있는 그 순간순간, 나는 자지 말고 머리를 굴려야 한다 혹은 밥은 더 먹지말고 물을 많이 마시자는 다짐을 한다. 자지 말고 머리를 굴려야 함은 잘 시간이 정해져있다는 가정하에 그 잘 시간에 정말 잘 자기 위함이고 근데 지금 당장 내 뇌가 필요로 하는 신체적 욕구를 억지로 피하면서까지 살 필요가 있나 싶기도 함과 동시에 인간은 의지로써 자기자신을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 수 있다는 (여기서 더 '나음'이란 신체적 정신적인 더 나음을 말한다) 생각등등 아무튼 많은 생각들을 하게 된다. 근데 이런 생각들이 다시 생각해보면 내가 너무 아무것도 안하고 있음을 반증해주는것 같기도 하다. 예를 들면 '무엇을 해야하나'라고 생각하는 시간은 운동을 하고 있지도, 밖에서 바람을 쐬면서 드는 생각도 아니고 (이 차이는 나중에 부연 설명), 정말 뇌를 너무 안 쓰고 있어서 미칠거 같은 심정에 생기는 질문이다. 이걸 운동도 안하고 그냥 일어나자마자 유툽 몇시간 보고 아무 것도 안하고 있을때 한다면 정말 몸도 마음도 입냄새도 나를 비참하게 만들고 생각에서 생각만 끝나고 머리도 더 나빠지는것 같고 몸뚱아리를 밖으로 내몰고 싶어도 내몰수 없는 우울한 상태가 찾아온다.

Thursday, 22 June 2017

Can We Spend One Day Without...

Sug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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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be I am biased in favour of Books, Non-stimulating food but only in mental level. I cannot 'do' the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