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1 September 2017

한국에 대한 생각

속초에 가서부터 캐나다에 오기까지 50대 후반을 지낸 남자들에 대한 생각을 계속 했다. 그 이유는 그들이 나에게 주는 스트레스 때문이였다. 할아버지가 방 밖으로 나가지 말라 했을 때 스트레스를 받았지만서도 오히려 그걸 지켜보고 있던 큰아빠의 위로차 하는 말도 스트레스였다. 그의 취지는 어쨌든 할아버지의 말을 들어야 한다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내가 할아버지 몰래 나갔다 와도 그 말을 들은 직후에 나는 큰아빠의 눈치도 보게되었다. 내가 할아버지한테 혼나는 장면을 본 다른 한분인 이모 할머니는 내게 괜히 자기가 더 미안하다는 눈치였고 앞으로는 말하지 말고 몰래 나가라 그런 말이였다. 근데 생각해보면 큰아빠가 한 말도 사실은 이모할머니가 한 말과 같은 내용이었다. 근데 큰아빠의 말 속에는 할아버지에 대한 존경이 섞여있었고 할머니의 말 속에는 할아버지가 늙어서 그렇다는 뉘앙스가 있었기에 나는 이모할머니의 어투에 훨씬 편안함을 느꼈다. 이렇게 큰아빠를 까는 이유는, 죄책감이 들긴 해도, 그가 의도하지 않게 상대방이 상처받는건 어쩔 수가 없는것 같아서이다.

나는 보통 말로 상처받는거에 대해 서술하고 그러면서 힐링을 하는 문제는 훨씬더 험학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아 말을 꺼내는데 주저하긴 하지만, 한국 50대 후반을 지낸 남자들의 행동은 한국의 주요 역사적 사실들과 연관관계가 있기에 얘기를 꺼내본다. 50대 후반을 지낸 분들은 우선 세뇌교육을 당했고 6.25를 경험하셨다. 70대 후반분들은 특히 그렇기에 크고 작은 전투에 이겨도 주위에 북한군이 숨어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당연히 할 수 밖에 없고, 그렇기에 그 후유증으로 연좌제를 시행했을 수 있다. 그렇게 하다가 필요 이상으로 많은 사람들을 이념이란 모호한 기준으로 축출하고 죽였다. 할아버지는 그런분이다. 그렇게 전쟁에서 승리하시고 일제의 도움을 받아 일자리를 얻어 내가 잘 살고 있는거다. 어쩌면 한국의 많은 이들이 그러하다.

이런 상황에서 할아버지의 장손인 큰아빠가 할 수 있는건 별로 없다. 그당시 할아버지는 무섭고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명령과 복종의 관계였기에 어쩌면 지금 큰아빠의 꼰대짓 혹은 할아버지의 이상에 반기를 들지않는 행동은 아주 당연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같이 이 정도 주장은 아무나 할 수 있다. 구체성이 떨어지고 그들의 이해관계에 훨씬 더 흥미로운 부분이 많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어쩌면 명령과 복종의 관계는 이미 다들 알고 있는 사실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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